거문도는 동백나무 숲이 무성해 이 숲길을 걸으면 한낮에도 어둡다.
민비가 살해된 후 신변에 불안을 느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그러자 한반도는 유럽의 발칸반도처럼 동북아의 화약고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연쇄적으로 터졌다.
[사진 김정탁] 이런 상황인데도 조선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19세기 말 국제정치의 압축파일 러시아 남진정책에 영국 견제구 국토 앗기고도 조선은 속수무책 지배층 분열에 열강의 싸움터로 청일전쟁·러일전쟁 잇따라 터져 개혁기회 놓치며 백성만 피눈물 이베리아 반도와 한반도남쪽에서 바라본 거문도.거문도는 동백나무 숲이 무성해 이 숲길을 걸으면 한낮에도 어둡다.
그래서 영국은 2년 만에 거문도에서 철수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은 극도의 무력감을 나타냈다.영국이 여기를 1713년부터 점거했으니 러시아로선 큰 낭패였다.
이미 시작된 갑오경장의 개혁마저 뒷걸음쳤다.
이에 남진 정책을 과감히 펼쳤는데 영국에게는 자신의 식민지를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었다.그리고 톈진 주재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조선조정 외교 고문인 묄렌도르프의 도움을 받아 청의 위안스카이(袁世凱) 간섭에 오랫동안 지친 조선에 친러의 씨앗을 심었다.
친청파·친일파·친러파의 갈등거문도 서도 남쪽 끝에 있는 등대.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다.
1891년에는 육로로도 눈을 돌려 9300㎞에 달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 건설에 착수했다.민비가 살해된 후 신변에 불안을 느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하니 어처구니가 없다